‘병마와 사투’ 14살 소녀가 27㎏…“빼빼 말라 친구들이 알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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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불량성 빈혈 환자 이승희양이 서울대 어린이병원에서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바느질을 하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
15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김미애(51)씨는 딸 이승희(14)양의 얼굴이 신문에 실리지 않길 바란다고 여러 번 부탁했다. 승희가 아프다는 사실을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았는데 혹시 누가 알아볼까 염려해서다. 김씨의 걱정에 승희가 체념하듯 말했다. “이렇게 빼빼 마른 나를 누가 알아봐.”
1년 남짓 병원 생활을 하는 동안 42㎏이던 승희의 몸무게는 27㎏으로 줄었다. 눈이 크고 속눈썹이 긴 소녀는 자기 머리보다 큰 검은색 모자를 쓰고 몸에 맞지 않는 헐렁한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모자 아래로 남자아이처럼 짧은 머리가 삐죽 나와 있었다.재생불량성 빈혈 이승희양
1년 만에 몸무게 15㎏ 빠져
조혈모세포 이식 불구 합병증
입원으로 중학 입학식에도 못가학교 수업은 온라인으로 따라가
대출 받고도 병원비 2300만원 부족일용직 아빠 월급으론 턱없어
집안형편 어려워 부모고생 걱정 승희는 초등학교 6학년 2학기가 막 시작되던 2013년 가을 재생불량성 빈혈 진단을 받았다. 손등과 종아리에 빨갛고 작은 반점이 올라오다 사라지고는 했다. 동네 작은 의원에서 동네 큰 병원으로, 다시 서울대병원에 1년 넘게 입원중이다.
입원하는 동안 초등학교 졸업식과 중학교 입학식은 가보지도 못했다. 병원에서 온라인 수업을 듣고 졸업장을 받았다. 중학교 역시 온라인 수업으로 학업을 따라가는 중이다. 지금껏 친구들과 담임선생님을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다.
“왜, 손댈 거 없는, 속 썩인 적 없는 딸 있잖아요. 공부를 잘해서 유명한 게 아니라 밝아서 학교에서 승희를 모르는 선생님이 없었어요.” 엄마는 환하게 밝았던 딸아이의 옛 모습을 떠올리는 듯했다. “미술 학원이나 피아노 학원 다니면서 이제 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려고 하던 중에 병이 났어요.”
재생불량성빈혈은 혈액을 만드는 골수의 기능이 떨어져 발생하는 질환이다. 적혈구나 백혈구, 혈소판이 감소하면서 감염 위험이 높아지고 피곤을 쉽게 느낀다. 후천성 재생불량성 빈혈은 100만명당 2~4명 정도로 드물게 나타나는데 조혈모세포이식이나 면역억제치료를 받지 못하면 사망률이 75%나 된다. 조혈모세포이식을 받으면 생존율이 90%로 오르지만, 감염 위험과 간이나 신장의 장기 손상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승희도 이식한 세포가 몸에 적응하는 과정에 문제가 생겼다. 지난해 1월 다행히 조혈모세포이식을 받았지만 감염 위험이 커졌다. 지금도 염증을 동반한 폐렴을 치료하는 중이다. 조혈모세포이식 전에는 1주일 이상 고통스런 항암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승희의 주치의인 강형진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혈액종양분과 교수는 “어른도 견디기 어려운 치료인데 한창 자랄 나이에 항암치료에 조혈모세포이식을 받는 것이 쉽지 않다. 갈비뼈 근처에 있는 균 덩어리를 제거하는 치료를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주치의도, 엄마도 승희의 병원 생활이 금방 끝나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
김씨는 딸의 마음이 상할까봐 늘 걱정이다. “승희가 친구들이랑 연락하고 싶지 않다고 해요. 살이 빠지면서 외모도 목소리도 많이 변했으니까. 전화도 안 하고 문자만 가끔씩 주고 받아요. 친구들 보고 싶지 않냐고 물으면 ‘내가 나아서 밖에서 만나야지’라고만 말해요.”
호기심 많고 적극적이던 막내딸은 소심해지고 예민해졌다. 승희는 6인실 병실에서 아침 8시30분에 일어나 밤 11시에 잠들 때까지 엄마하고만 지낸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만나는 아빠와 언니가 병원 밖 세상과 만나는 유일한 창이다. 좋아하는 길거리 음식도 먹지 못하고 또래 사이에 유행하는 놀이도 모른다.
2013년 10월부터 지금까지 승희의 수술비와 입원비를 합치면 2억2000만원이 넘는다. 대출과 후원으로 지난해 11월까지의 병원비는 어렵게 맞출 수 있었다. 그런데 여전히 2300만원이 남았다. 고물상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아버지(55)가 버는 돈은 한달에 180만원. 김씨는 집안 형편을 뻔히 아는 승희가 부모 힘들까봐 자꾸 눈치를 보는 게 가슴에 박힌다고 했다.
“빨리 퇴원해서 이 고통 다 잊어버리고 예전처럼 밝은 우리 가족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승희가 걱정하지 않도록 잘해주고 싶은데…. 가끔씩 ‘엄마 무슨 생각해?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빨리 나가줄게’라고 말하면 너무 미안해지고…. ” 빨갛게 충혈된 김씨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엄마가 힘들었던 병원 생활을 회상하는 동안 승희는 자원봉사자와 바느질 수업을 하고 있었다. 승희는 낯선 사람들과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고 했다. 수업을 마치고 엄마를 기다리면서, 자기가 만든 주머니만 만지작거리고 있던 승희의 손가락이 유달리 가늘고 하얗다. 핏기도 윤기도 없는 작은 손에는 붉은 흉터 자국이 자잘하게 박혀있었다.
“승희야, 너 손이 참 예쁘다.” 말을 붙이자 김씨가 대신 대답했다. “우리 승희 손 예쁘죠?” 그제야 승희가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듯 말했다. “이 손이 뭐가 예뻐.”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묻자 승희는 “빨리 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14살 소녀는 아무 말 없이 한참을 자기 손만 들여다봤다.(승희양과 엄마의 이름은 가명을 썼습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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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와 사투’ 14살 소녀가 27㎏…“빼빼 말라 친구들이 알아볼까”
재생불량성 빈혈 환자 이승희양이 서울대 어린이병원에서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바느질을 하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15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김미애(51)씨는 딸 이승희(14)양의 얼굴이 신문에 실리지 않길 바란다고 여러 번 부탁했다. 승희가 아프다는 사실을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았는데 혹시 누가 알아볼까 염려해서다. 김씨의 걱정에 승희가 체념하듯 말했다. “이렇게 빼빼 마른 나를 누가 알아봐.”
1년 남짓 병원 생활을 하는 동안 42㎏이던 승희의 몸무게는 27㎏으로 줄었다. 눈이 크고 속눈썹이 긴 소녀는 자기 머리보다 큰 검은색 모자를 쓰고 몸에 맞지 않는 헐렁한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모자 아래로 남자아이처럼 짧은 머리가 삐죽 나와 있었다.재생불량성 빈혈 이승희양
1년 만에 몸무게 15㎏ 빠져
조혈모세포 이식 불구 합병증
입원으로 중학 입학식에도 못가학교 수업은 온라인으로 따라가
대출 받고도 병원비 2300만원 부족일용직 아빠 월급으론 턱없어
집안형편 어려워 부모고생 걱정 승희는 초등학교 6학년 2학기가 막 시작되던 2013년 가을 재생불량성 빈혈 진단을 받았다. 손등과 종아리에 빨갛고 작은 반점이 올라오다 사라지고는 했다. 동네 작은 의원에서 동네 큰 병원으로, 다시 서울대병원에 1년 넘게 입원중이다.
입원하는 동안 초등학교 졸업식과 중학교 입학식은 가보지도 못했다. 병원에서 온라인 수업을 듣고 졸업장을 받았다. 중학교 역시 온라인 수업으로 학업을 따라가는 중이다. 지금껏 친구들과 담임선생님을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다.
“왜, 손댈 거 없는, 속 썩인 적 없는 딸 있잖아요. 공부를 잘해서 유명한 게 아니라 밝아서 학교에서 승희를 모르는 선생님이 없었어요.” 엄마는 환하게 밝았던 딸아이의 옛 모습을 떠올리는 듯했다. “미술 학원이나 피아노 학원 다니면서 이제 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려고 하던 중에 병이 났어요.”
재생불량성빈혈은 혈액을 만드는 골수의 기능이 떨어져 발생하는 질환이다. 적혈구나 백혈구, 혈소판이 감소하면서 감염 위험이 높아지고 피곤을 쉽게 느낀다. 후천성 재생불량성 빈혈은 100만명당 2~4명 정도로 드물게 나타나는데 조혈모세포이식이나 면역억제치료를 받지 못하면 사망률이 75%나 된다. 조혈모세포이식을 받으면 생존율이 90%로 오르지만, 감염 위험과 간이나 신장의 장기 손상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승희도 이식한 세포가 몸에 적응하는 과정에 문제가 생겼다. 지난해 1월 다행히 조혈모세포이식을 받았지만 감염 위험이 커졌다. 지금도 염증을 동반한 폐렴을 치료하는 중이다. 조혈모세포이식 전에는 1주일 이상 고통스런 항암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승희의 주치의인 강형진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혈액종양분과 교수는 “어른도 견디기 어려운 치료인데 한창 자랄 나이에 항암치료에 조혈모세포이식을 받는 것이 쉽지 않다. 갈비뼈 근처에 있는 균 덩어리를 제거하는 치료를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주치의도, 엄마도 승희의 병원 생활이 금방 끝나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
김씨는 딸의 마음이 상할까봐 늘 걱정이다. “승희가 친구들이랑 연락하고 싶지 않다고 해요. 살이 빠지면서 외모도 목소리도 많이 변했으니까. 전화도 안 하고 문자만 가끔씩 주고 받아요. 친구들 보고 싶지 않냐고 물으면 ‘내가 나아서 밖에서 만나야지’라고만 말해요.”
호기심 많고 적극적이던 막내딸은 소심해지고 예민해졌다. 승희는 6인실 병실에서 아침 8시30분에 일어나 밤 11시에 잠들 때까지 엄마하고만 지낸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만나는 아빠와 언니가 병원 밖 세상과 만나는 유일한 창이다. 좋아하는 길거리 음식도 먹지 못하고 또래 사이에 유행하는 놀이도 모른다.
2013년 10월부터 지금까지 승희의 수술비와 입원비를 합치면 2억2000만원이 넘는다. 대출과 후원으로 지난해 11월까지의 병원비는 어렵게 맞출 수 있었다. 그런데 여전히 2300만원이 남았다. 고물상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아버지(55)가 버는 돈은 한달에 180만원. 김씨는 집안 형편을 뻔히 아는 승희가 부모 힘들까봐 자꾸 눈치를 보는 게 가슴에 박힌다고 했다.
“빨리 퇴원해서 이 고통 다 잊어버리고 예전처럼 밝은 우리 가족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승희가 걱정하지 않도록 잘해주고 싶은데…. 가끔씩 ‘엄마 무슨 생각해?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빨리 나가줄게’라고 말하면 너무 미안해지고…. ” 빨갛게 충혈된 김씨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엄마가 힘들었던 병원 생활을 회상하는 동안 승희는 자원봉사자와 바느질 수업을 하고 있었다. 승희는 낯선 사람들과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고 했다. 수업을 마치고 엄마를 기다리면서, 자기가 만든 주머니만 만지작거리고 있던 승희의 손가락이 유달리 가늘고 하얗다. 핏기도 윤기도 없는 작은 손에는 붉은 흉터 자국이 자잘하게 박혀있었다.
“승희야, 너 손이 참 예쁘다.” 말을 붙이자 김씨가 대신 대답했다. “우리 승희 손 예쁘죠?” 그제야 승희가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듯 말했다. “이 손이 뭐가 예뻐.”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묻자 승희는 “빨리 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14살 소녀는 아무 말 없이 한참을 자기 손만 들여다봤다.(승희양과 엄마의 이름은 가명을 썼습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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