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마이너] ‘장애이주민’의 자리를 함께 만들어나가길 바라며

2026-04-21

[2026년 420 기획연재 Ⅱ] 경계 너머 장애이주민 권리찾기 ①

소수자인 이주민 중에서도 소수자인 장애인, 방치와 고립 속 장애이주민

장애는 국적과 인종을 가리지 않지만, 비국적 장애인 차별하는 법과 제도

장애 이주아동, 난민아동 등 사실상 방치…장애인 지원제도 허들 너무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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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 티셔츠를 맞춰입은 사람들이 ‘장애와 이주, 이중의 차별을 넘어서자! - 장애 이주민 인권을 위한 모임’이라고 적힌 파란색 깃발을 펼쳐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이주민과 함께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민주주의’


작년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슬로건을 보며 다소 엉뚱한 방향으로 이동이라는 말에 꽂혔더랬다. 국경을 넘는 이주 또한 이동일 터인데, 장애인들은 이주의 자유가 있나? 당연히 그렇다. 그러나 국민국가 체제에서 꼼꼼하게 쳐놓은 제도라는 경계들은 이러한 권리를 제약한다. 나라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국가는 노동력을 수반하지 않는 인구 유입을 억제하려 안간힘을 쓴다. 장애인이 보다 나은 삶을 꿈꾸며 자유롭게 이주하는 세상이 그려지시는가?


2025년 12월 기준 한국 내 이주민은 271만 명이 넘어 총인구의 5.2%에 달한다. 그중 귀화 또는 이주배경 아동(다문화가족 자녀)으로 한국국적을 가진 사람이 24.8%이고, 다양한 체류 자격으로 거주하는 외국국적 이주민은 204만여 명으로 대구광역시 인구와 맞먹는다. 이들 외국국적 이주민이 잠재적으로 장애인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다. 비국적 장애인을 차별하는 법과 제도 때문이다. 장애가 국적과 인종을 가리는 것이 아니기에 이주민의 장애인 비율이 한국인 장애인과 비슷할 것이리라 추측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그동안 장애이주민은 장애인 인권에도 이주민 인권에도 외면당하고 있었기에 존재를 드러내지 못했다.


한국사회에서 이주민은 돈을 벌기 위해 노동하러 온 사람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어 장애인은 한국으로 이주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로 여겨진다. 일하다 다쳐 장애가 생기면 한국을 떠나야 한다. 노동을 조건으로 발급된 비자는 산재환자에게 치료를 위한 임시 체류만 허락할 뿐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정부의 이민정책이 숙련 기능 인력 유지를 위한 정주형 비자 발급으로 전환되면서 한국에서 10년, 20년 머물러 살며 가족을 구성하고 아이를 낳고, 정착하는 이주민들이 늘어났다. 장애를 가진 이주아동 상담이 많아진 배경이다.


J는 미등록 이주아동으로 중증 뇌병변장애가 있었고 엄마는 우울증을 호소했다. “아기 태어나고 2년 동안 바깥에 한 번도 안 나갔어요. 누군가 보면 예민해지고 좀 창피한 것도 있어서 누가 집에 오는 것도 안 좋았어요. 이제 적응했지만 힘들어요. 베란다에서 멍하니 내다보다 여기서 떨어져 죽으면 어떨까 생각 들어요.” J의 재활치료와 엄마의 정신건강 상담을 연계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건강보험이 없어 병원의 재활치료는 너무 비쌌기에 장애인복지관의 문을 두드렸다. 복지관은 장애인 등록이 되어 있는지 물어봤고, 최소한 체류 자격이라도 있어야 지원할 수 있다고 했다. 정신건강증진센터는 최소한 말이라도 통해야 뭘 해볼 수 있다고 난감해했다. ‘국민’에겐 거저 주어진 그 ‘최소한’이 이들에겐 가장 난이도 높은 허들이었다.


B는 중국동포 4세로 돌 전에 낙상 사고로 머리를 다치고 뇌성마비 진단을 받았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치료가 되는 질병이 아니라는 말에 부모는 아이를 놓아버렸다. 아이는 할머니에게 맡겨졌고 7살이 되도록 방 안에서 누워 지냈다. 취학연령이 되었으나 외국국적 이주아동인 B에게 취학통지서는 가닿지 않았고, 할머니는 아이가 학교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을 꿈에도 하지 못했다. 특수학교에 입학할 수 있고, 학교에 다니면 장애인 등록이 가능한 비자로 변경할 수도 있다고 했지만, 장애인 등록이 되어도 지원이 없다는 걸 알고 거부했다. “목도 못 가누는 애가 학교에 어떻게 다니나요. 장애인 등록? 도움 되는 것도 없는데, 해서 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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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 티셔츠를 입은 집회 행진 참여자가 ‘장애인 등록 지원을 받기를 요청합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이주민과 함께

B와 J가 처음은 아니었다. ‘이주민과 함께’가 이주민 인권의 사각지대로 장애가 있는 이주민을 인식하게 된 것은 2016년 뇌병변장애가 있는 난민아동 M과의 만남에서 비롯된다. 당시 9세였고 특수학교에서 입학 허가를 받았지만 등하교를 할 수 없어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었다. 건강상의 이유로 등하교를 도울 수 없었던 부모에게 학교 측은 아동의 장애인 등록과 활동지원 서비스 신청을 권했지만, 당시 「장애인복지법」은 장애인 등록이 가능한 외국인의 범위를 재외동포, 영주권자, 결혼이민자로 한정하고 있었기에 난민 인정자였던 아동은 장애인 등록이 불가능했다.


‘이주민과 함께’와 ‘이주와 인권연구소’는 「난민법」에 근거하여 보건복지부 질의와 행정소송을 진행했고, 그 결과 2018년 난민 인정자도 장애인 등록을 하고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법과 지침이 일부 개정되었다. 일련의 과정은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져 비슷한 사례와 마주친 이주민단체나 사회복지사로부터 문의가 이어졌다. 그러나 장애인 등록 대상에 추가된 것은 딱 난민뿐이었기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조금 더 거슬러 가보자. 장애인이 국가의 복지서비스를 받으려면 장애인 등록이 필요하다. 한국 정부는 이를 국민에게만 허용하고 있었기에 한국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고 있어도 장애인의 범주에서 배제된 사람들이 생겼다. 대표적인 사례가 화교다. 2007년 장애를 가진 대만 국적 화교 이주민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고 4년이 지나 「장애인복지법」에 동포 및 외국인에 대한 특례조항이 만들어졌다. 외국국적 동포와 영주권자, 결혼이민자는 장애인 등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예산 등을 고려하여 장애인복지 사업의 지원을 제한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이 붙었고, 화교 중에도 영주권이 없거나 한국인과 결혼한 사람이 아닌 장애인은 제외되었다. 난민아동 소송의 결과로 2017년 「장애인복지법」이 한 차례 더 개정되었으나 난민을 제외한 이주민들은 장애인 등록을 해도 여전히 활동지원이나 연금, 수당, 의료지원, 발달재활서비스 등 필수적인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소수자인 이주민 중에서도 소수자인 장애인은 세상으로부터 주목받지 못했고 장애이주민의 생존 문제는 오롯이 당사자와 가족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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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진행된 ‘장애와 국적, 이중의 차별을 넘어’ 간담회 모습. 사진 이주민과 함께


이들이 직면한 구체적 현실을 우선 알아야 했다. 2023년 서울, 경기, 인천, 대전, 부산, 충남, 경남의 이주민단체 활동가들과 면담하며 장애 이주민의 인권 실태를 조사했다. 20명의 심층 면접 사례 중 아동이 17명으로 압도적이었고 그래서인지 재활치료와 생계 문제가 절박했다.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2024년 ‘바보의나눔’ 공모배분에 신청하여 재활치료와 의료비, 보조기, 장애인 등록 등을 지원하는 기금을 마련했고, 한편으로 차별적 제도개선을 위한 캠페인을 시작했다.


4.20 대회에 참석하여 장애이주민의 존재를 알리고 장애인 인권을 위해 싸우는 동지들에게 연대를 호소하는 것, 장애이주민 인권을 의제로 장애와 이주 두 영역의 인권단체들을 모아나가는 네트워크 활동, 안되는 것투성이인 복지서비스의 틈을 벌려 지역사회에서 지원 가능한 자원을 만들어내는 활동을 병행했다. 2023년 부산에서 열린 세계장애인대회에서 장애이주민의 인권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고, 2025년에는 ‘장애이주민 권리보장 네트워크’를 발족하고 토론회를 열었다. 2025년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 시민사회 보고서에 장애이주민의 차별을 수록하였고, 위원회는 장애가 있는 비시민권자의 사회보장과 의료서비스 접근에 대한 특별한 주의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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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숙 (사)이주민과 함께 상임이사 beminor@beminor.com